메리골드 마음 세탁소_책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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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지우고 싶은 얼룩들이 좀 있다. 기억에서 완전히 지우고 싶은 나쁜 기억들. 만약 나도 마법의(?) 티셔츠를 입으면 얼룩이 얼마나 될까? 분명 깨끗하진 않을 것이다. 흰 티셔츠에 여기저기 얼룩이 선명해 만약 손빨래를 해야 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막막할 수도 있다. 기억을 지워주는 세탁소? 조금 뻔한 동화스토리 내용이 스멀스멀 예상되었다.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쌍갑포차'를 2회까지 본 적이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이 드라마와 오버랩이 많이 되었다. 메리골드 세탁소에서 나오는 '지은'은 쌍갑포차에 '월주(황정음)'의 이미지를 계속 연상케 했다. 나이가 몇백 년 정도 든 이 두 여인 '지은'과 '월주'. 쌍갑포차에서는 술을 주고, 메리골드 세탁소에서는 따뜻한 차를 한 잔 준다. 그리고 불편한 과거의 기억을 꺼내 '쌍갑포차'에서는 꿈에 직접 들어가 상대방에게 복수를 해주고, '메리골드 세탁소'에서는 기억을 지워준다는 문맥에서 비슷함을 느낄 수 있었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책의 첫 부분에, 눈앞에 마법처럼 나타난 세탁소에 들어간 손님으로 '재하'와 '연희' 두 친구가 등장한다. 어머니와의 외로운 기억을 지우고 싶은 '재하'와 첫사랑의 아픈 기억을 지우고 싶은 '연희'. 사실,,, 책을 읽으면서 두 친구의 사연에는 크게 감동을 받지 못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너무 많이 봤던 탓일까? 두 친구의 사연은 너무 뻔하고 뻔했다. 이제는 웬만한 스토리에는 감동도 받지 않을 만큼 나이가 들고 있는 것일까,,, 스토리에 집중을 영 하지 못했다. 슬픈 스토리들이긴 하지만,,, 너무 유치했다. 그러나 세탁소 공간의 이미지를 설명하는 중간중간 부분에서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느낌을 받을 정도로 섬세하고 부드러운 문체가 좋았다. ' 1층 바 테이블 옆에 있는 나무 문을 열자,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시냇가의 빨래터처럼 맑은 물이 흐르고 있고, 곳곳에 바위도 있고 새소리도 들린다. "세상에. 여기 뭐예요?" "마음 세탁소니까." ' 나도 모르는 새에 메리골드 세탁소에 직접 들어가 사연을 듣고 있었다. 작가님의 문체에 감동을 받으며 한 줄 한 줄 읽어나갔다.

 

다음 사연의 주인공인 '은별'의 직업은 인플루언서다. 인스타에서는 유명하고 찬란한 연예이지만 현실에선 그저 외로운 한 소녀인 고전적인 내용. 가엾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럽다. 나도 인스타에서만이라도 예쁘고 늘씬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은별'이 나는 너무 이해가 갔다. 만약 나도 몇백만 팔로워에, 그렇게 인기 있는 삶을 살다가 그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내려놓을 수 있을까? 돈 때문에 가족 간의 평화로운 관계가 끊어진 건 사실이지만, 그 많은 돈과 명예를 포기하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하지만 '지은'의 말이 위로를 준다. 너를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 이해받으려고 하지 말라고. 나는 인플루언서는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은별'과 같은 삶을 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의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내가 하는 말과 행동들에 괜히 조심하게 되고,,, 결국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찾고, 남보다 못한 가족들을 용감하게 거절도 하며 그렇게 멋있게 자신의 길을 살아가는 '은별'을 보면서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연자'의 사연은 짠했다. 항상 아끼면서 살아야했던 '연자'에게 외식은 꿈같은 일이다. 점심 회식으로 중국음식점을 갔을 때, 항상 동생들에게 양보했던 '연자'는 허겁지겁 짜장면과 탕수육을 입에 집어넣는다. 입으로 탕수육을 씹고 눈으로는 팔보채 접시를 보며 생각한다는 대목에서는 '연자'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자기의 아기를 가지게 했던 작업반장이 유부남이었다니 이런,,, 읽다 보니까 첫 부분에 나왔던 '재하'의 어머니였다. 오, 이런 전개 참 재밌다. 아, 불행한 스토리가 재밌다는 것이 아닌 중구난방의 스토리였지만 알고 보니 하나의 길로 흘러가고 있는 스토리. 내가 좋아하는 글의 구성이다. 마치 추리소설에 어울리는 구성이라고 할까? '재하' 이야기에서 왜 자기가 가장 외롭고 아팠던 기억에 어머니가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를 원망했던 '재하', 그 누구에 잘못도 아니었다. '재하'를 외롭게 한 것도, 힘들게 한 것도. '어머니'도 또한 평생 외로웠었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를 비롯해 약 50만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온 에세이스트 윤정은 작가의 문학상 수상 이후 11년 만에 장편소설. 상처를 인정하고 마음을 열어 보이는 용기와,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상처를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이 작품 전반에 진하게 녹아 있다. 이 책은 벼랑 끝내 몰린 것 같은 어느 날, 마음 같은 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그런 날에 숨어들어 상처를 털어낼 수 있는 은신처가 되어줄 것이다. -교보문고 책 소개-

 

책의 첫 부분 즈음에선 뻔한 스토리들로 잠시 방황(?)할 뻔 했지만, 가끔 삶에 지쳤을 때, 물질적인 것만 보고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잠시 내려놓고 싶을 때 휴식처가 되어주는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였다. 모든 주인공들이 우연이 아닌, 인연으로 메리골드 마을로 온 것이었다. 살아가면서 추억하고 싶은 곳, 평생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이 정말 우연처럼 마주하게 된다면? 상상만 해도 너무 행복해진다. 나의 마음속에 메리골드 세탁소는 어디일까 생각해 본다. 나의 가족이 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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